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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인재개발원 등의 사이버학습을 정리, 요약하는 상시학습 블로그입니다. 깨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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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리핀

 

  ○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
    ▷ 전직 마르코스대통령과 영부인 이멜다의 국부 스위스 비밀계좌로 유출

    ▷ 이어지는 전직 대통령 및 측근들의 부정부패

 

  ○ 부패가 만연한 선거 : 부패 구조화

    ▷ 선거비용을 개인의 후원자금으로 충당(당선 후 후원자에게 특혜를 줄 수밖에 없다)

    ▷ 아직도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주요 공약이 '부정부패 척결'이다.

    ▷ 필리핀의 선거를 가리켜 흔히 3G(Golds, Goons, Gun)라고 얘기한다.

    ▷ 선거철만 되면 정적에 대한 선거테러 때문에 몸살을 겪음
    ▷ 투표방해, 개표 지연 등 부정선거가 만연했다.(지금은 전자투표를 도입하여 많이 개선됨)

 

  ○ 정치인-후원자-일반인의 금전거래 관계
    ▷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예산을 배정하는 데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다.

    ▷ 그래서 정치인이나 가족, 그리고 후원자에게 금전적인 특혜가 빈번하게 주어진다.

 

  ○ 부패가 이미 관행화된 관료사회 -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 독직사건에 대한 사회적 오명이 없다.

 

  ○ 사법기관의 행정부 시녀화, 유명무실
    ▷ 사법부가 있지만 유명무실하고 정치적 독립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 유전무죄, 무전유죄

 

  ○ 지나친 관료주의

    ▷ 각종 규제와 번거로운 절차로 인해 뇌물이 일상화 됨

 

 

 

피플파워 [ People Power ]

   민중의 힘'이라는 뜻을 가진 '피플파워(People Power)'는 필리핀에서 발생한 2차례의 시민혁명을 부르는 말로, 피플파워가 발생할 당시 집권하고 있던 마르코스 대통령과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모두 물러나게 됐다.

■ 1차 피플파워

  1986년 2월25일 독재정권과 부패한 관리, 무능한 정부에 대항해 일어선 피플파워는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필리핀의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피플파워 당시 국민들은 전면적인 토지개혁을 외쳤고 필리핀 국민과 세계 각국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아키노는 취임 이후 일련의 개혁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민주 질서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피폐해진 경제와 마르코스 잔당에 의한 7번의 쿠데타 시도, 기득권계층인 지주들의 압력에 타협 등으로 필리핀의 빈부격차는 마르코스 시절보다 더 극심해졌었다. 

  그리고 92년 5월 아키노는 대통령 선거를 통해 피델라모스 대통령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다.
  한편, 2002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대통령은 1차 피플파워가 발생한 2월25일을 특별국경일로 정했다. 


■ 2차 피플파워

  2001년 1월 수만명의 군중이 각종 뇌물 스캔들에 휩싸여있던 조셉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했고 결국 에스트라다는 사임하였고 글로리아 아로요 부통령이 새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 출처 : 네이버 지식사전(http://j.mp/MVhFz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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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망하게 된 이유


  ○ 정치지도자들의 대중영합 경제정책

    ▷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한 인기위주의 표풀리즘(페론주의)

    ▷ 표퓰리즘에 입각한 정책의 반복으로 국가부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남


  ○ 정경유착 - 부정부패 사회전반에 만연

    ▷ 90년대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때부터 국부의 마구잡이식 민영화

    ▷ 민영화 과정에서 정치인은 리베이트 챙기기에 열 올렸고

        기업은 정상적 기업활동 보다 정치권과 결탁해 이권을 따내기에 급급


  ○ 정치지도자의 부패

    ▷ 2001년 12월 3일 '1천 달러 이상 예금인출 제한'이라는 극약처방 내림

      - 정책발표 직전 3일간 전체 외화 예금액의 20%가 넘는 거액이 빠져나감

      - 지배계급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심각한 부패에도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남


  ○ 사법기관의 행정부 시녀화

    ▷ 정치권에 대한 봐주기식 재판과 솜방망이 처벌로 사회특권층 조장

    ▷ 법조인들이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함


  ○ 정보공개법 부재

    ▷ 정보공개법이 없다.


 페론주의(스페인어:Peronismo)는 아르헨티나의 정치 운동으로,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영부인 에바 페론의 정치 활동이 그 출발점이다. 페론의 당이었던 아르헨티나 정의당(Partido Justicialista)에서 따온 정의주의(스페인어:Justicialismo)라는 표현도 쓰인다.

 페론주의를 현대 포퓰리즘의 원조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페론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일은 쉽지 않으며, 이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일각에서는 페론이 무솔리니를 동경했던 것을 들어, 페론주의를 파시즘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페론주의는 프랑스의 드골주의와 비교되기도 한다. 페론 본인이 20년 가까이 스페인에 망명했던 점 역시 중요한 점이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다시 권좌에 오른 페론은 좌익에서부터 반유대주의 성향의 파시스트 우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그의 정책을 빌어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라고 풍자하기도 한다.


 페론주의의 몇몇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강하게 중앙집중화된 정부와 권위주의적인 성향

   외세의 영향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의 경제 발전 추구.

   민족주의와 사회 민주주의의 통합


 ※ 출처 : 위키백과사전(http://ko.wikipedia.org/wiki/페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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