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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에 해당되는 글 2

  1. 2013.08.11 독립운동가를 통해 본 나라사랑과 국가관
  2. 2013.01.02 오늘의 명언(2013.1.1)
 


1. 신돌석 - 일원산 호랑이

○ 신돌석의 가계와 신분

▷ 1989년에 영해의 복평(현 영덕군 축산면 부곡동)에서 신석주(申錫柱)의 아들로 태어남

▷ 본명은 신태호(申泰浩) - 신돌석(申乭石)은 아명

▷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예

▷ 평범한 농민으로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상민 신분

○ 의진 결성

▷ 을사조약 늑결 이후 1906년 4월 6일 적게는 1백 명, 많게는 3백 명 정도의 규모로 거의를 함

▷ 의진의 전기에는 영덕 북부와 평해를 중심으로 봉화, 청송까지 이동

▷ 의진의 후기에는 영양과 울진읍, 청송 등 남쪽과 북쪽을 주로 이동

○ 신돌석 의진의 의의 : 중기의병에서 후기의병으로 발전되어가는 중간 도정의 전형


  登樓遊子却行路(등루유자각행로)      누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고

  可歎檀墟落木橫(가탄단허낙목횡)      낙목이 가로 놓인 단군의 터전 탄식하네

  男子二七成何事(남자이칠성하사)      27세 남아 이룬 일이 무엇인가

  暫倚秋風感慨生(잠의추풍감개생)      추풍에 의지하니 감개만 나는구나



2. 안중근 - 만주땅에 울려퍼진 애국의 소리

○ 학교 설립과 계몽운동

▷ 삼흥학교

- 1906년 봄 진남포 용정동의 자책에 세우고, 교장으로 취임

- 삼흥은 토흥·민흥·국흥의 3흥을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 구국운동의 역군 배출에 역점을 둔 민족 사립학교(군대식 훈련 실시)

▷ 돈의학교

▷ 서무학회

○ 간도·연해주 망명과 의병적 전환

▷ 교육운동으로는 쓰러져 가는 국운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판단

▷ 간도관리사 이범윤을 만난 자리에서 의병거의를 촉구

▷ 단지동맹 : 의병 실패 후, 1909년 초 의병 제기를 위해 맺은 동맹

○ 안중근이 전개한 구국운동의 의의와 특징

▷ 이등박문 포살은 구국과 동양평화를 지키기 위한 그의 활동 가운데 최후의 수단으로 강구된 것

○ 동양평화론

▷ 서양의 침략을 맞이하여 동양평화를 유지하려면 한국과 청국, 일본 등 삼국이 각기 독립을 유지한 가운데 단결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

▷ 동양평화의 범주에는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태국, 미얀마까지를 대상으로 포함

▷ 동서양을 떠나 국가와 민족간의 전쟁과 분쟁의 원인을 제거하자는데 그 기저를 두고 있어 결코 인종주의에 매몰되지 않음

▷ 동양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한국 독립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골간을 이룸


  白日莫虛渡(백일막허도) 靑春不再來(청춘부재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見利思義(견리사의) 見危授命(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人無遠慮(인무원려) 難成大業(난성대업)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爲國獻身(위국헌신) 軍人本分(군인본분)     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一日不讀書(일일부독서) 口中生荊棘(구중생형극)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謨事在人(모사재인) 成事在天(성사재천)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의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



3. 주시경 - 국어교육, 한글운동의 선구자

○ 주시경 : 한글 연구의 개척자, 국어 교육과 한글운동의 선구자, 민족 독립 정신 고취

○ 1896년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 등과 함께 국가의 독립과 민족 자립을 목적으로 독립협회 조직

○ 배재학당에서 서재필의 가르침에 자극을 받아 정치적 애국운동 단체인 협성회를 조직

○ 1906년 6월 <대한국어문법> 편찬, 1908년 8월 31일 <국어연구학회 창립>, 1910년 4월 <국어문법> 발간


  •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려지나니라.
  •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 그 사람들이 무리진 덩이가 천연으로 이 땅덩이 위헤 홀로서는 나라가 됨의 특별한 빛이라.



4. 신채호 - 민족주의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 출생과 계몽운동

▷ <황성신문> 및 <대산매일신보>의 기사와 논설을 통해 일제의 침략을 날카로운 필봉으로 바판

○ 먕명과 독립투쟁

▷ 동제사 : 상해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국인 독립운동 단체

▷ 임시정부 활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의열단과 무정부주의 운동에 가담

조선혁명선언

- 1923년 의열단의 창당 선언문으로 마련

의열단장 김원봉의 부탁으로 집필(아나키스트 류자명의 도움이 컸음)

○ 민족주의 사학

▷ <독사신론>,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상고사> 등 민족사관 수립하고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

  • 잃어버린 나라는 되찾을 수 있지만,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영원히 망한다.
  •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예수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시일야우방성대곡 [是日也又放聲大哭]


  한.일의 새로운 조약이 체결되던 날에 한국 서울 안팎의 일반 시민들은 큰 소리로 통곡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민영환.조병세 두 충정공이 순국하는 날에 남녀 노유가 일제히 통곡하여 천지가 죽은 것처럼 비통해하였고, 또한 주일 공사가 철수하여 돌아온 날에 이 나라의 관립,사립 학도 4백여 명이 정차장에 쫓아 나와서 전별할 때에 다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으니, 본 기자가 듣고 서러워하며, "아, 슬프다! 대한 동포여. 오늘날의 정경이 참으로 가련하고 슬픈 일이오"하고 탄식하였다.

 

  4천년 조국이 지금은 쓸쓸한 곳으로 변하였고, 2천만 형제가 괴롭고 고통스럽게 되었으니, 어찌 곡하여 울지 아니하겠소. 그러나 대한의 제군들은 행여 울음을 잠시 멈추고 나의 한 마디 말을 들으시오.

 

  대체로 오늘날 나라의 형편이 이와 같이 되었으니, 대한의 백성들은 삼한 갑족의 좋은 가문이 많은 것도 노예가 되기는 마찬가지요. 일품에 해당하는 대신의 훌륭한 자격도 붙들려가기를 당하는 것은 한 가지요, 드높은 담장의 훌륭한 집도 남의 사는 집이 될 것이요, 상권도 남의 상권이요, 공업도 남의 공업이요, 화물 수송권도 다른 사람의 것이니,

 

  대한의 백성들은 어떠한 자산 활동을 할 것인가? 앞으로 하와이의 이민과 같이 미국 영토에 붙어 살까, 블라디보스토크의 유민과 같이 러시아 땅에 예속할까. 천지간에 나라 없는 백성은 어디에 살든지 노예는 고사하고 생명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오. 백 번을 생각하여도 한국 동포를 죽음에서 구하는 방법은 학문 이외에 다른 방책은 없으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바로 오늘부터 외국의 학문에도 힘써 보시오.


  골패, 화투가 왠일이오. 신문을 보고, 독서하시오. 저 기생과 축첩에 혹하여 빠지지 말고,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시오. 관직을 사냥하려 굴을 뚫지 말고, 염치와 도리를 차려 보시오. 밭을 구하려 관사에 방문하지 말고 남아의 사업을 경영하여 보시오. 재산으로 자손에게 물려주지 말고 학업으로 자손을 길러 보시오.

 

  산림에 은거하여 이름을 낚지 말고, 재상을 그만둔 편안함을 기르지 마시오. 포로의 치욕을 당하게 생겼소.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아서 말없이 눈을 감는 것이 소용없소. 운동과 연설이 긴요한 것이오. 심성을 이야기하고, 이기를 논하는 것이 소용없소. 농업과 공업, 상업이 절실하게 급한 것이오.

 

  대체로 인생의 학문이 열려 나가면 지혜가 발달하고 사업이 왕성하게 일어나 하늘에서 받은 자유권을 회복할 기회가 있을 것이오.

 

  타인의 종살이에서 벗어날 방침이 있을 것이니, 나쁜 운수가 가고 좋은 운이 돌아오고 고통이 다하면 감미로운 것이오며, 오늘의 슬퍼서 흐느끼는 모양이 변하여 다음날 기뻐 웃으며 즐겨 하는 모양이 되기도 필연적인 이치니, 대한의 제군들은 생각하여 근면하도록 하시오.


1905년 12월 28일 대한매일신보에 개제한 글



5. 이회영 - 자유를 위해 투쟁한 아나키스트

○ 만주 망명과 신흥무관학교

▷ 을사조약 저지투쟁과 신민회 조직에 앞장섰으며, 만주망명 이후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 항일혁명투쟁

▷ 북경에서 중국 아나키스트들과 교류하며 에스페란어,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의 이해를 통해 아나키즘 사상을 수용

▷ 한인 유민들을 규합하여 공동소비·공동소유하는 협동조직체를 구성하여 안정적인 독립군 양성기지를 만들기 위해 만주행을 결심

○ 우당의 사상

▷ 자유연합적 독립운동 지도부를 주장하며 임시정부 구성에 반대

▷ 민중에 의한 직접혁명과 무장독립투쟁 노선을 추구

※ 함께 보기 : [SBS 3.1절 스페셜] 우당 이회영, 애국의 길을 묻다. 


  •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백성을 깨우쳐야 한다.



6. 이승만 -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

○ 광무황제 폐위 음모 연루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구명 노력으로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가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면직

○ 해방 후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

※ 비교해서 보기 : 100년전쟁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7. 안창호 - 우리 민족의 지도자

○ 16세 때 경험한 청일전쟁을 계기로 민족에 눈을 뜨게 됨

○ 미국 유학 시절

▷ 독립자격을 갖춘 모범적인 한인사회를 만들고자 한인들에게 먼저 자아혁신을 할 것을 얘기함

○ 국권회복운동과 국민국가 건설의 꿈

▷ 공립협회 조직활동이 성공하자 동지들의 후원을 받아 국내로 입국, 신민회를 결성하고 국권회복운동에 뛰어듬

▷ 신민회의 목표

- 국민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할 것

- 동지를 발견하고 단합하여 국민운동의 역량을 축적할 것

- 교육기관을 각지에 설치하여 청소년의 교육을 진흥할 것

- 각종 상공업 기관을 만들어 단체의 재정과 국민의 부력을 증진할 것 

○ 국외 한인 통일조직망 구축 : 일제의 강제병합 단행 계기(흥사단 창립)

○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생명를 불어넣다.

○ 민족우선의 신념 : 독립운동계의 다양한 노선과 이데올로기 혼돈 속에서 민족우선의 신념을 지켜 근대민족국가 건설의 목표로 민족의 힘을 결집


  • 견고한 기초 위에 좋은 건설이 있고 튼튼한 뿌리 위에 좋은 꽃과 열매가 있다.
  •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8. 김구 - 민족의 큰 스승

○ 구국운동

▷ 18세에 동학에 입도하여 의병활동을 함

▷ 강화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교육활동을 함

▷ 을사늑약 때는 조약파기 상소를 올리는 등 구국운동을 전개

※ 치하포의거 : 국모시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육군중위 쓰치다를 처단, 사형 선고받고 교수행 집행 직전 고종황제의 특사가 내림, 이후 탈옥하여 충청도 마곡사에 들어가 원종이라는 법명을 얻고 스님이 됨. 반년 만에 환속하고 귀향

○ 항일독립운동

▷7년간 정부의 주속, 광복군의 통수권자

▷ 한국국민당을 결성하고 집행위원장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을 전개

○ 민족통일운동

▷ 해방이후 민족의 분단을 막고 자주적이고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함


  • 얼굴이 장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바른 것만 못하다.
  •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복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9. 이승훈 - 기독교 민족운동의 영원한 지도자

○ 차별의 땅에서 태어나 사업가로 성공

○ 안창호를 만나 신민회 회원이 되어 민족운동을 펄침

▷ 서당을 새롭게 단장하여 강명의숙을 세우고 근대식 교육 시작

▷ 교육을 통한 국권 회복에 평생을 바침

○ 오산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운동에 나서 무실역행을 실천

○ 관서자문론을 외치며 민족자본을 키움

○ '안명근 사건'과 '105인 사건'으로 시련을 겪음

○ 민립대학 설립운동에 나서고 동아일보 사장을 맡았음


  • 오산의 졸업생은 어디를 가나 어디에 있으나 거짓말을 하지 말고 남을 속이지 말고 자기가 맡은 일은 게을리 하지 말고 몸소 행하여 민족의 영광을 높이는 인물이 되라.    - 제1회 오산학교 졸업식 훈화
  • 부지런 하라.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라.  - 오산학교 학생들에게 많이 하신 훈화



10. 조만식 - 민중과 함께 한 조선의 간디

○ 평안도의 평민문화를 선도한 자리적 중산층의 대표 민족지사

○ 기독교 입교와 일본 유학 :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독실한 신앙인으로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됨

○ 오산학교 재직과 물산장려운동

▷ 민간 차원의 보호무역운동이자 시민경제주권운동인 물산장려운동을 전개

○ 풀뿌리 민족운동의 근거지 평양YMCA :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 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하여 지역사회의 공론에 기초한 생활정치 실험


  • 우리가 앞으로 고국에 돌아가게 되면 피차 고향을 묻지 말고 일해 나가자. 인화와 단결이야말로 앞날 국난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나라가 독립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 국산품 애용이라 해서 물건을 아무렇게나 만들어 소비자를 속이고 제 돈벌이만 하는 것은 도리어 국산품을 모독하는 행위다. 물건보다 먼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물건을 만드는 각자의 마음을 고쳐야 한다. 국산품의 질은 민족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11. 조신성 - 서북을 호령한 여성독립운동가

○ 유년시절은 고아로,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별하여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됨

○ 기독교 수용을 통해 민족과 여성의 문제를 자각하게 됨

○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사감으로 재직하다가 일본 유학을 거쳐 북경에서 민족운동에 가담

▷ 진명여학교 교장으로 재직

○ 맹산독립단 조직을 주도하고, 대한독립단에서는 항일무장투쟁과 군자금 모집을 전개

○ 사회주의여성운동세력과 민족주의운동세력이 함께 근우회를 조직한 후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약

○ 다시 교육운동으로

▷ 주로 야학운동을 함

▷ 취명학교와 고육원 운영

○ 해방 후 월남을 하여 불우한 삶을 살다가 80세 일기로 운명

※ 함께 보기 : 가슴 벅찬 우리 역사(4월의 교육자 조신성)


  • 가슴에다 육혈포, 탄환, 다이너마이트를 품고 시시로 변장을 해가며 깊은 산 속을 며칠씩 헤매고 생식을 해가면서 고생을 하고(…) 주막에서 순검에게 잡혀서는 격투하거나, 오도 가도 못하고 끼니를 굶어가며 산속에서 며칠씩 숨어 있었다.          <1934년 '신가정'의 한 기자의 인터뷰 중>



12. 최용신 - 농촌계몽운동에 청춘을 불사른 독립운동가

○ 샘골(천곡)에서 야학, 강연회, 생활개선, 근검저축 등을 통해 민족역량을 강화하고 자발적인 농촌계몽운동을 전개

○ 협성신학교 재학 중 농촌계몽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업을 중단

○ 민중을 위한 계몽활동 : 한국YMCA 대표 활동, 교육사업, 농가부업, 위생생활과 환경개선, 저축장려 사업, 부인회·청년회·구우계조직 및 운영

○ 농촌계몽운동사상의 위상

▷ 더불어 나눔과 함께하는 공동체적인 삶

▷ 삶의 질을 풍요하게 하는 정신적인 여유 모색

▷ 남년 평등권 실현

※ 심훈의 <상록수> 여주인공인 채영신의 실재 모델


나는 갈지라도 사랑하는 샘골[천곡;泉谷]강습소를 영원히 경영하여 주십시오. 

김군과 약혼한 후 십년 되는 금년 사월부터 민족을 위하여 사업을 같이 하기로 하였는데
살아나지 못하고 죽으면 어찌하나.
샘골 여러 형제를 두고 어찌가나.
애처로운 우리 학생들의 전로를 어찌하나 애처로운 우리 학생들의 전로를 어찌하나.
어머님을 두고가매 몹시 죄송하다.
내가 위독하다고 각처에 전보하지마라.
유골을 샘골강습소 부근에 묻어주오.
                                                                                                  <채용신의 유언(19335)>



13. 이태준 - 신의라 불린 독립지사

○ 한국에서의 삶 - 한말구국운동에 참여

▷세브란스의학교 재학시절 안창호의 권요로 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담

○ 중국으로의 망명

▷ <105인 사건>으로 중국으로 망명

▷ 중국의 혁명 정당 인물들과 교류

▷ 중국혁명세력의 학생군에 가담하였던 한인 유학생들과도 교류

○ 몽골행

▷ 몽골의 고륜으로 이동하여 동의의국 병원을 개업

▷ 몽골국왕으로부터 국가 훈장을 받는 등 몰골 왕족들의 두터운 신임을 확보

○ 항일혁명 운동

▷ 각지의 애국지사들과 긴밀한 관계 유지 및 비밀 항일활동
▷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의관 감무로 활약

▷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 지원

○ 비극적 최후

▷ 한인사회당에서 연락을 담당한 비밀당원으로 활동하던 중 코민테른 자금을 운송하다가 발각되어 피살됨


  •  이 땅의 민중을 위하여 젊은 일생을 바친 한 조선청년의 기특한 헌신과 희생을 되짚어 보았다. 

 - 여운형 선생이 이태준의 무덤앞에서



14. 유일한 - 역대 가장 윤리적인 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

○ 미국에서의 유학시절

▷ 한인소년병학교(박용만이 설립)에서 민족정신을 배움

▷ '제1차 한인회의'에서 주축으로 활동함

- 김현구와 조안 우 등과 함께「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을 작성

○ 유한양행을 설립해 민족기업으로 육성

▷ 미국에서 라초이식품회사를 설립 후 운영하다가 귀국하여 유한양행을 설립해 민족기업으로 육성

○ 독립운동가로 헌신

▷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통한 독립운동 전개

▷ 고려경제화를 통한 선전활동 수행

▷ 납코(NAPKO)작전(한반도 침투를 위한 특수훈련)에 참여

○ 광복 이후 공익사업을 위해 헌신

▷ 유한양행의 회사 주식 공개 및 주식 분산,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

▷ 유한양행을 통해 나오는 자신의 모든 지분을 한국사회의 공익을 위해 사용


  •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
  •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남기고 또 명성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이다.
  •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 이윤 추구는 기업성장을 위한 필수 선행 조건이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



15. 손기정 - 세계를 제패한 마라토너

○ 달리기를 잘하는 소년

▷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다시 돌아와 취직을 한후 조선신궁대회에 출전하여 5천m 경기에서 2위를 차지함

○ 마라토너가 되기까지

▷ 양정고등보통학교 육상팀에 들어가 마라톤의 매력이 빠짐

○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

▷ 마라톤에 출전하여 2시간 29분 19초 2로 우승을 차지

○ 손기정의 가슴에서 지워진 일장기

▷ 최초의 사진은 <조선중앙일보>에 실렸고, 이어 <동아일보>에도 실림

▷ 관련 언론인 탄압받게 됨

○ 잃어버린 국적 찾기

▷ 해방 이후 올림픽 수상자 명단에 적혀 있는 기념비에 '잃어버린 국적'을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함


  • 우승은 햇는데 왠일인지 울고만 싶소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 직후
  • 투구는 개인 것이 아닌 민족의 것이고 국가에 기증하면 국민에게 긍지를 심어줄 수 있다.

- 1994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 기념으로 받은 청동 투구를 국가에 기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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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백 번 참으면 가정에 태평과 화합이 온다'고 해설한 곳도 있고,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라고 해설한 곳도 있다. 둘 다 인내를 강조한 내용으로 선현들의 구전글귀중 하나이다. "한결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세상에는 어려움이 없다(一勤天下無難事)"와 짝을 이루는 말이다. 1910년 2월 안중근이 옥중에서 남긴 글씨이다.


- 안중근의사유묵(安重根義士遺墨) -



東岳聖帝垂訓曰(동악성제수훈왈)

一日行善(일일행선)이라도 福雖未至(복수미지)나 禍自遠矣(화자원의)요
一日行惡(일일행악)이라도 禍雖未至(화수미지)나 福自遠矣(복자원의)니

行善之人(행선지인)은 如春園之草(여춘원지초)하여 不見其長(불견기장)이라도 日有所增(일유소증)하고

行惡之人(행악지인)은 如磨刀之石(여마도지석)하여 不見其損(불견기손)이라도 日有所虧(일유소휴)니라.

(동악성제가 훈계를 내려 말하기를

하루 착한 일을 하면 복은 비록 당장에 오지 않더라도 재앙은 스스로 멀어질 것이요 
하루 악한 일을 하면 재앙은 비록 당장에 오지 않더라도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봄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나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더해지는 바가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무뎌지는 것이다.)


-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에서 - 


[오늘의 명언]
조용한 물이 깊이 흐른다.(Still waters run deep.)
- 영어속담 -


[마음글]
전혀 웃지 않는 날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e.e. 커밍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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