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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텐 국가를 말하다

책 이야기 | 2015. 5. 21. 02:00 | Posted by 깨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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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진왕 영정은 자신의 성공을 "상고(上古) 이래로 일찍이 있었던 적이 없으며, 오제(五帝)도 미칠 수 없는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삼황’과 ‘오제’에서 각기 한 글자씩 취해 ‘황제(皇帝)라고 칭했다. 동시에 ’시호(諡號)‘를 폐지하고, 자칭 ’시황제(始皇帝)‘라고 하였다. -38~39p


진시황은 또한 황제가 임명하고 반포하는 것을 ‘제(制)’, 명령을 내려 시행하는 것을 ‘조(詔)’라고 불렀으며, 스스로는 ‘짐(朕)’이라고 칭했다. 짐은 원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이전에는 누구라도 자신을 짐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그러나 황제가 스스로 짐이라고 칭한 이상 이후로는 그 누구도 이 호칭을 사용할 수 없었다. 황제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이지만 천하의 일반 백성들은 ‘신불유기(身不由己))’, 즉 자신의 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39p


무왕과 주공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생활하는 이 세계는 ‘상천(上天)’, 즉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그래서 ‘천하(天下)’라 부른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의 관리자는 하늘의 아들이기 때문에 ‘천자(天子)’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토지는 당연히 천자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넓은 하늘 아래 왕의 영토가 아닌 곳이 없다(溥天之下, 莫非王土)”의 본뜻이다. 모든 토지가 이미 천자의 것이니, 그 토지에 살고 있는 백성들 역시 모두 그의 신하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일러 “바다에 이르는 땅의 끝까지 왕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다(率土之濱, 莫非王臣)”라고 한다. 이리하여 주왕은 지고무상의 권력과 지위를 부여답고, 그 천하를 분봉한 것 역시 법도에 맞는 근거를 얻게 되었다. -64p


(중략) 진나라는 효공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략) 정치 개혁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주제’를 폐지하고 ‘지주제’를 실시한다. 먼저 귀족 영주의 지위와 특권을 거두어들여 일반 백성 가운데 지주나 부자 정도로 강등시킨다. (중략)

둘째, ‘세습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를 실시한다. (중략)

셋째,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한다. (중략) -80~82p


제국은 권력 사회의 전형적인 형태이며, 황제는 제국의 핵심이다.

진 제국은 건국 초기 어전회의에서 다음 두 가지를 결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는 제국의원수를 향후 ‘황제’로 칭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93p


(중략) 한 왕조가 결국 전제로 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개국 초기에는 일정 기간 동안 절약과 관용을 베풀기 마련이다.

고명한 황제인 한 고조 유방은 두 가지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하나는 명목이 번다했던 진대의 형률 대신 “살인은 사형, 상해와 도둑질은 그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한다”는 ‘약법삼장(約法三章)’을 시행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한도로 백성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불필요한 착취를 금지시켜 ‘백성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도록’ 만든 일이다. -107


(중략) 그렇다면 한 무제가 창조한 것은 없었을까? 있다. 예를 들어 ‘독존유술(獨尊儒術)’이 바로 그것이다.

『한서(漢書)』「동중서전(董仲舒傳)」에 따르면, “육예(六藝, 육경(六經)이라고도 함.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악기(樂記), 역경(易經), 춘추(春秋)를 가리킨다)와 공자의 학설을 따르지 않는 것은 모두 끊어버리고 함께 나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원래 동중서(董仲舒)가 제출한 대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백가를 내치고 유가 사상만을 존승하자(罷黜百家 獨尊儒術)’이다. -115p


(중략) 사실 사에게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근본은 수제치평(修齊治平)네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수는 수신(修身)이며, 제는 제가(齊家), 치는 치국(治國)이다. 그리고 평은 평천하(平天下)의 뜻이다. 첫 번째는 자신을 위한 것이과, 뒤에 나오는 세 가지는 각기ㅣ 대부, 제후, 그리고 천자를 위한 것인데, 사의 도움이 필오하다. 다시 말해 사는 우선 자신을 잘 관리하여 도덕적 수양을 닦고 문예와 무예를 익혀야 하는데, 이것이 수신이다. 그런 다음에 대부를 도와 채읍을 보살피니, 이것이 제가이다. 또한 제후를 도와 방국을 다스리는 것이 치국이며, 천자에게 협조하여 사해를 안정시키는 것이 평천하이다. -116p


(중략) 유학의 또 다른 장점은 간단하고 행하기 쉽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집을 나서면 부모에게 고하고, 되돌아오면 뵙고 인사를 올린다”라고 하니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는 지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일반 서민들을 통치하는 데 이로울뿐더러 제국의 사상을 그들에게 파급시키는데도 크게 이롭다. 임금은 높이고 백성은 어리석게 만들며 조작하기도 쉬우니 어찌 관방의 이데올로기로 흠정(欽定, 황제가 손수 제도나 법률 따위를 제정하는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 대부터 청대까지 중국의사상학술계는 거의 유가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121p


제도 개혁은 명 태조 주원장부터 시작되었다. 그 역시 집권주의자이다. 그의 통치 수단은 다음 네 가지로 개괄된다. 첫째, 집권 제도를 강력하게 이행한다. 둘째, 군주제의 권위를 제고한다. 셋째, 문무 공신을 살육한다. 넷째, 지방 관리를 정돈한다(이상은 주곡성의 『중국통사』 참조). -140p


중국 고대의 법률은 ‘법(約法)’이라고 하기보다 ‘율(刑律)’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울린다. 그것의 주요 기능은 관민들이 죄를 범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규정하며, 이외에 민사 소송에 대한 처리 방안을 제시할 뿐 공민의 권리나 의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당시에는 아예 ‘공민’이란 개념조차 없었으며, 단지 ‘신민’만 존재했을 따름이다. 신민은 신하로 복종하는 백성을 말한다. 신하로 복종하지 않는 사람(죄를 저지르거나 도둑을 포함하여)은 반드시 그 죄를 다스려야만 한다. 죄를 다스리자니 나름의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법’이다. 이렇게 볼 때 이러한 형률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법치’라고 하기보다 ‘율치(律治)’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164p


"큰 도가 사라지자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다. 친척들이 화합하지 않으니 효자(孝慈)가 생겨나고, 국가가 혼란해지자 충신이 생겨났다.(『노자』 제18장)

이는 다시 말해 한 사회에서 열심히 도덕을 표방하고 고취시키고자 한다면 이미 그 사회는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확실히 부족에서 국가로 이르면서 고대 씨족사회의 순박한 도덕이 추락하게 되었다. 대신 ‘새롭고 문명적인 계급사회’의 장막이 드리우면서 ‘가장 비속한 이익-저속한 탐욕과 조악한 정욕, 비천한 물욕, 공공재산에 대한 약탈’이 서서히 드러났다.(『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 이러한 추락은 심지어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 -171p


당나라 법률, 즉 당률(唐律)은 교화와 공권(公權), 등급과 윤리를 중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략)

윤리치국의 기본 원칙은 다음 네 마디로 개괄할 수 있다. 소인은 대인에게 복종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고, 민간은 관방에게 복종하고, 전국은 황제에게 복종한다. 이는 제국이라는 집권 사회의 성질에 지극히 부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집권은 덕과 예이고 또 온정이라는 외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일종의 ‘비전형적인 폭력’으로 변한다. 임금과 아비에 대해서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경애’라고 일컫고, 신하나 자식에 대한 제한 없는 침범을 ‘자애’라고 말한다. 마치 전체 제국이 ‘사랑의 낙원’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통치자 자신은 속셈을 감추고 있다. (중략) -178p


(중략) 제국 이전 시대가 남긴 치국의 방법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유가가 주장한 ‘덕치’, 둘째 법가가 주장한 ‘법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가가 주장한 ‘무위이치(無爲而治)’이다.

이 세가지 ‘이름과 전투 구호, 그리고 옷’은 제국 창립 초기에 이미 사용한 적이 있다. 진 제국은 두 번째 법가의 법치를 사용했고, 한나라 초기에는 세 번째 도가의‘무위이치’를 사용했다. 전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후자는 단지 임시변통의 계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남았고, 유효할뿐더러 오랫동안 사용된 것은 ‘덕치’, 즉 ‘윤리치국’밖에 없다. ‘덕치’는 유가의 주장이자 유가만이 주장할 수 잇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치국은 곧 유학치국(儒學治國)‘이니, 유가 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190p


(중략) 그렇기 때문에 권력 집중이 강화되는 시기에 부패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명청 양대의 부패는 진한, 당송보다 훨씬 심각했다. 명청대는 아예 부패가 하나의 풍조처럼 되었다. 이른바 ‘관장누규’라는 것도 이러한 풍조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는 권력 집중이 가장 심했으며, 황권이 가장 막강하고 전제가 강력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부패와 전제는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 -257p


(중략)

예를 들어 모든 이들이 받아 챙기는 ‘모선’이나 ‘누규’라면 가능했다. 권한의 범위 내에서, 즉 제국의 법률과 공인된 도덕에 명확하게 위배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자신과 타인을 위해 적당하게 이익을 취한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 관원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유가 경전을 수없이 읽었던 이들이니, 관원으로서 나름의 이상과 신념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상이나 신념이 밥을 먹여주지는 안는다. 지나치게 낮은 봉급만을 받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결국 그들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인가된 ‘비전형적인 부패’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어쩌면 ‘관장누규’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심리 상태에서 시작되어 발명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60p


(중략)

막대한 피해를 몰고 온 자연재해의 경우, 그 원인이 단순히 전재지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 때문에 재앙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예를 둘어 방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거나 구조 활동이 지체되고 지휘 계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그러하다. 원인을 상세하게 분석해보면, 관련 기관이 마비나 관리들의 어리석음, 책임 전가나 기만, 부정부패(홍수 방비를 위한 댐을 만드는데 부실시공을 한 경우)에 기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 인재이다. 이런 경우는 반드시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그러나 황제는 이에 대해 말하지 않고 신민들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보기에도 당당한 ‘죄기’라는 미명하에 모든 이들(황제는 물론이고 탐관오리나 우매한 관원들까지 모두 포함하여)의 책임이 전부 깨끗하게 사리진다.

제국의 책임 회피는 거의 전방위적이다. 우선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을 맡겠다고 선포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응당 져야 할 책임은 책임질 여력이 없는 이들에게 떠넘겨버린다. 이것이 바로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는 논리이다. 이는 줄곧 ‘애국주의 정신’을 고양하는 논조로 여겨졌고, ‘천하를 자신의 소임으로 삼는다’는 사대부의 국사(國士)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러한 정신이 민간에서 제창된다면 괜찮지만 관방에서 강요한다면 분면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백성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괜찮지만 제국이 이를 선전한다면 옳지 않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될 경우 책임의 주체가 전도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천하의 흥망은 정부에 책임이 있다”거나 “천하의 흥망은 천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해야 옳다. 천하는 필부의 것이 아니라 황제의 것, 또는 황제가 대표하는 권력 집단의 것이기 때문이다. 황제가 스스로 정권을 차지하고 오히려 천하를 차지한 적이 없는 필부에게 제국의 흥망을 책이지게 하다니, 도대체 하늘 아래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324p


(중략) 정책을 결정할 때는 박자를 맞추지만 일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박자를 맞춘 사람도 책임을 지지 않고 다만 대리인에게 죄를 물을 뿐이다. 가장 전형적인 예가 바로 경자지변이다. 당시 선전포고한 이는 자희태후지만 죄를 받은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또한 8국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마땅히 책임져야 할 최고 통치자는 종적도 없이 도망쳐버렸다. 책임이라는 두 글자는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

서로 비교해보면 허군(虛君) 공화국이나 입헌군주제 국가의 원수나 왕실이 훨씬 책임감이 강하다. 2002년 봄,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후가 그토록 존경받았던 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책임과 의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에 런던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328~329p


(중략)

또한 헌정은 단지 헌법의 틀 안에서 정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행정을 제한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를 제한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있는 유명한 ‘입법 불가’ 조항이 증명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방의회는 종교를 설립하거나 종교 활동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언런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그리고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을 표현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400~401p


(중략) 따라서 진정으로 일반 백성의 복지를 보장하는 나라라면 반드시 민주, 공화, 헌정을 갖추고 있어야만 하며, 동시에 자유와 법치, 인권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405p


마르크스는 「고타강령비판」이라는 문건에서 공산주의의 세 가지 조건을 제기한 바 있다. 첫째, 사회 재부의 원천이 충분히 분출되어야 한다. 둘째, 사람들이 더 이상 노예처럼 사회적 분업에 복종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노동이 생계 유지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생활의 첫 번째 요구여야만 한다.(『마르크스․엥겔스 선집』 제3권 12쪽). -415p


4장 관원대리의 ‘악랄하고 가증스러운 목민관’에서 소개하는 부분

명청대 관원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한 부분이었는데, 이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중국 관리들은 쥐꼬리만한 봉록으로 인해 생활에 지장이 많았다. 대신 일반 민초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권력을 가졌다. 그래서 관례적인 것을 묵인하는 풍토가 있었는데, 가장 흔한 방법은 모선(耗羨). 모선이란 조세로 들어오는 미곡과 은자를 정해진 양을 넘게 거두는 것을 말한다. 조세로 거둔 미곡을 운반하다보면 손실이 생기고, 은자를 녹여 원보(元寶)를 만들면 어느 정도 축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호부에서 징수하는 것은 반드시 정량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은자나 미곡을 약간 더 거두었는데, 이를 미모(米耗, 쌀), 화모(火耗, 은자)라고 했으며 이 둘을 통칭해서 모선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는 사리나 법으로 근거가 있으니 위법행위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애매모호한 계산방식에 있었다. 얼마가 모자라 얼마를 더 거두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더 걷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둔 모선 중 상당부분은 상급기관에 효경(孝敬)이라는 명목으로 상납했다. 효경에 명목과 규칙을 붙인 것을 ‘관장누규(官場陋規)’라고 한다. 관가이 오래된 나쁜 관습으로 ‘규례(規禮)’라고도 불렀던 관장누규는 겨울 난방비(炭敬), 여름 냉방비(冰敬), 그리고 삼절(설, 단오, 중추절)과 양수(兩壽, 영도자와 그 부인의 생일)에 보내는 절례(節禮)와 수례(壽禮) 등과 같이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것도 있었고, 상급기관이 시찰 때 노잣돈으로 건내는 정의(程儀)나 상급기관에 부탁이나 타 부서로 발령나면 부서에 내는 별경(別敬) 등 비정기적으로 제공되는 것도 있었다.

이외에도 향리에서 현에 일처리를 맡길 때 내는 공사(公事), 명절이나 새해에 지방 상인이나 진신들이 바치는 일종의 축의금인 규례(規禮), 그리고 돈으로 징벌을 대신하는 벌속(罰贖) 등도 관례적으로 부패로 간주되지 않았고, 일종의 팁으로 찻값 명목인 다전(多錢)을 받은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실제로 모선, 누규, 효경을 받지 않은 관리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관례보다 적게 받는 것을 청관(淸官)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더구나 적은 봉록을 지급한 황제가 묵인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부패로 간주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부패는 부패인지라 저자는 이를 ‘비전형적 부패’라 규정한다.




이중톈 국가를 말하다

저자
이중톈 지음
출판사
라의눈 | 2015-03-2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한국에도 마니아 독자를 가진 중국 학자 이중톈의 『이중톈 제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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